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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 예찬

일본 28년 기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텅빈 10평 원룸 최소한의 삶: '퇴사하겠습니다' 이후 집 크기 줄이고 가능성 찾기! 행복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by 노마드 25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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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소비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돈 버는 방법을 아는 것, 소비즈니스의 등장인물들이나 미디어 속의 정치인을 비롯해 우리 시대의 부유한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자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자기 운명에 만족하고 야심 없이 사는 것은 소비사회의 눈에는 용납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나약함으로 보인다. 우리 시대에는 다수의 시선에 스스로를 비추어보고, 그 앞에 자신을 펼쳐 보이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의 비밀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 미스터 빈, 자크 타티의 영화 <나의 아저씨>(최신 주택에 사는 소년과 변두리 지역에 사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통해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사는 편을 택하는 것이 어째서 부끄러운 일이어야 하는가?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 19세기 노동자들의 작은 집(작지만 최소한의 필요한 것이 다 갖춰진 집)이나 잘 꾸며진 편안한 작은 원룸에서 살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사회의 덫

우리는 우리의 부모, 교육, 직업, 문화를 통해 객관적으로는 진실이 아니지만 "원래 그런 거지." 하고 인정하게 되는 견해나 이론을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기로 결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태어나 자란 곳의 문화, 그 속에서 물려받은 믿음과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인은 더욱더 드물다. 평생 집단 생활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권력에 기생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정치및 경제 체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삶을 사는 것(혹은 삶을 구원 하는 것)보다 살기 위해 돈벌이를 하는 편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게 만들고 있는데도, 우리는 이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한다. 또한 사회 구조는 자기 일을 최대한 스스로 하는 것보다 타인의 서비스( 세탁소, 가사 도우미, 금융 컨설턴트, 요리를 잘하고 집안일과 세탁을 '좋아하는' 아내)에 의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불어 안정된 고용과 그 후의 은퇴 생활이 보장되면 인간의 존재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에서는 멋지고 큰 집으로 대표되는 '소유'가 행복의 상징이 된다. 행복을 차지하려면 대출을 받아야 한다. 당신이 꿈꾸던 것보다 더 작은 아파트를 사서 상환 연수와 이자를 반으로 줄이라고 충고할 은행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더 나쁜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겼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가 일본 도쿄의 자택에서 침대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년 책 <퇴사하겠습니다>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이나가키 에미코. 그는 51살이 된 2016년, 28년간 기자로 일한 <아사히신문>을 그만두고 낡고 작은 이 집으로 이사했다. 지금까지 최소한의 전기와 가스만 쓰며 단출한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미니멀 라이프를 담은 에세이 책을 여러 권 발간했다. 명성을 얻은 이후 시간이 꽤 흘렀고 그사이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혹시 생활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궁금했지만 익숙한 '뽀글뽀글 머리'를 한 아나가키 작가의 사는 모습은 유명해진 지금도 검소한 모습 그대로였다.

<출처: 한겨레 21>

이나가키 작가가 <아사히신문> 퇴사 뒤 7년째 사는 도쿄의 10평 원룸. 이곳에서 냉장고, 세탁기 등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가전제품 없이 살고 있다.

 

집 안에 들어서면 정면에 베란다 통창으로 도쿄 주택가가 눈앞에 펼쳐진다.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이 없어 커튼도 달지 않고 햇빛을 온전히 받으며 지낸다고 한다. 50년 된 아파트이고 7년 전 이사 왔을 때 모습 그대로 벽지도 바꾸지 않고 살아 세월은 머금은 벽지와 가구들이 눈에 띄인다. 공간을 차지하는 가구는 침대와 수납장, 장식장 정도가 전부였다. 10평 원룸이지만 텅 빈 느낌이 강해 훨씬 넓게 느껴진다.

 

왼쪽은 주방. 밥 지을 때 쓰는 무쇠냄비와 남은 밥을 보관하는 나무밥통, 각종 절인 음식을 담은 유리병 등이 있다. 오른쪽 화장실 벽에는 각종 청소도구가 걸려있다. 화장실 안쪽 창고에는 작가가 평소 앞치마, 가방 등을 만들 때 쓰는 뜨개질 도구가 보관돼있다.

 

작은 주방과 화장실을 둘러봐도 냉장고와 세탁기는 없다. 그는 도시가스를 연결하지 않고 휴대용 버너를 사용해 요리한다. 요리라고 해봐야 밥, 된장국, 절인 채소 등 간단한 음식이다. 주방 찬장에는 쌀겨된장절임(누카즈케)과 조미료 등이 있었고, 바닥에는 매실절임(우메보시)을 만드는 통이 놓여 있었다. 버너엔 밥 지을 때 쓰는 작은 무쇠냄비가 올려져 있었고, 그 옆엔 밥을 보관하는 나무밥통이 있었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다 부엌 소품으로 나무밥통이 있는 것을 보고 마련했는데, 더운 날이 아니면 이틀 정도 밥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에미코, 회사 그만둔 후;절약보다 즐거운 건 안 쓰는 것

 

우리의 행복을 사회가 규정하고 있다.

경제계는 우리를 의존적으로 만드는 편이 이득이다. 큰 공간에 살수록,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더 많은 유지비, 더 많은 정비, 더 많은 작업 등등. 우리는 필요라는 개념을 쾌락이라는 개념과 더는 구별하지 못한다. 미디어와 광고는 우리에게 따라가야 할 길, 즉 '대중적인' 행복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이 표준적인 가치들을 퍼뜨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외모는 이런 저런 이상적 아름다움에 도달해야 하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사랑을 찾아야 하며, 특정한 물건들(스마트폰, 광파 오븐, 로봇 청소기)을 소유해야 하는 시대에 뒤처진 고지식한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이 강요된 전형에 대항할 무기인 자신만의 특색을 잊어버린 것은 이미 그 시스템에 빠져 거기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무절제한 부와 과시적인 물질주의가 잠시 동안은 매혹적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견실 수 없는 것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고 합리적인 금액으로 올바른 식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자동차(특히 큰 자동차)없이도 잘 살 수 있다. 우리는 더 작은 아파트에서도 살 수 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와 개인적 가치관을 변화시킴으로써, 삶을 변화시키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지시받고 항상 다른 사람이 이끄는대로 선택하는 어린아이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떠한 외부의 도움 없이도 완벽하게 자신을 관리할 능력이 있다. 정부의 권력과 그에 대한 복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중 사회가 닦아놓은 길에서 나오는 것이다. 단 몇 제곱미터에 불과하더라도, 자기만의 집을 얻는 것은 독립을 향한 문을 여는 방법 중 하나이다.

 

-도미니크로로 '작은 집을 예찬한다'중에서...-

 

일본 도쿄 자택에서 만난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
이나가키 작가가 베란다에서 키우는 루콜라, 차조기 등 샐러드용 채소(왼쪽)와 건조 중인 부추

 

채소는

베란다에서 건조한다.

냉장고가 없으니

식재료 보관은 말리거나

절이는 방법을 쓴다.

 

이나가키 작가가 헌옷으로 만든 앞치마를 보여주고 있다.

 

옷은 침대 옆에 있는 

6단 서랍장에 보관된 것이 전부이고

책이 많았는데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헌책방에 다 넘겼다고 한다.

책방 주인과 마음이 잘 통해

그곳을 자신의 도서관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작지만 넓고, 물건이 없지만

알찬 집과 그이 미니멀 라이프가

존경할 만하다

 

 

물건이 행복을 채워주지 않는다.

'로버트 벨라'는 1950년대 출판된 그의 저서에서 이미 현대 문명의 폐해와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른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과거 일본의 전통 가옥은 아주 작기는 했지만 정원이 있는 예술 작품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 정원에서는 모든 이가 자연의 순환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집들이 거대한 현대적 건물을 짓기 위한 재개발로 사라지면서 정원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유료 주차장이 들어섰다. 아마 운 좋은자들만이 발코니와 꽃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물건을 사서 쌓아두는 것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배운다. 모든 주민은 이웃에게 철저한 이방인이 된다. 간단히 말해 도시에서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더는 중산층 가족이 전통적인 가치를 보존할 수 없게 되었다. 부와 권력을 끊임없이 축적해 보았자 사회는 나아지지 못한다. 도리어 사회는 점점 약해지며 더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불행히도 이 통찰력 있는 저작의 내용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소박한 밥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요리를 안 하고,

이미 만들어놓은 걸

꺼내 먹는 게 제 식생활이에요.

만들 때는 30분~1시간이 걸리지만

그걸로 1년 계속 먹는다고

생각하면 간단하죠.”

 

-이나가키 에미코-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의 주요 저서. 왼쪽부터 <퇴사하겠습니다>(2017),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18),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2018),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2020), <가사인가, 지옥인가>(2023)

 

 

이나가키 에미코의 텅 빈 10평 원룸에서 울려퍼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고 정의하는 능력에 있다. 직접적인 경험과 체험을 통해 그녀가 깨달은 것처럼, 진정한 행복은 큰 집이나 많은 물건에 있지 않으며, 그것은 오롯이 우리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할 보물이다.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0elxtPAEe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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